아주 오래된 습관 하나, 해마다 이때쯤 되어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으면 문득 문득 떠올라 나도 모르게 읊조리는 국어 시간에 배웠던 글 두조각, 그리고 노래 한자락.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페이터의 산문"에 인용되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의 어느 대목. 그리고 어느 누구가 부른 것보다 김정호가 노래한 "날이 갈수록".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人跡)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 그래서, 벽은 헐어서 흙이 떨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