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 장로교 교인일 때, 교회 집회에서 자신이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면 방탕한 삶과 부도덕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 간증하는 교인들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로 말미암아 도덕적이 될 수
있었다고 믿는 이런 생각은 장로교인들 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사고는 기독교를 포함하여
근본주의적 성향의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기회 될 때마다 종교인들이 인간들의 도덕적 잣대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사는 것을 비판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도덕적 잣대가 구원의 기준은 아니며 단지 믿음만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며,
죗된 세상에 살며 죄를 짓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에 예수의 십자가와 그 보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로에 의하면 행위로 구원을 얻을 자 없다는 말은 덤으로 얻어 걸치는 말이었고요. 그러면, 나는 한마디 하고는 맙니다.
"예수는 너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는데....."
말의 주제를 파악 못 하는 사람들과 입씨름하기 싫어 그만두는 편입니다만, 구원은 둘째치고 최소한 도덕적으로
소위 쪽팔리는 삶은 살지 말라는데, 구원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면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그런 사고가
유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이기적 유전자》를 집필한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며, 유명한 무신론자입니다.
유신론, 무신론을 떠나 중립적 위치에서 그의 말을 한 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그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니 한번 보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밑에 인용한 글은 출처가 기억나지 않지만 잘 정리된 글이라 갈무리했다 올립니다.
이 인터뷰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 영어 제목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도킨스: 도덕적 나침반은 종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Dawkins: Religion no moral compass
2013년 9월 27일
Q: 종교가 사회에서 하는 역할에 대한 당신의 회의적인 태도를 알게된 독자들 중에는 종교가 사라지게 되면 우리가 도덕적 나침반(moral compass)도 없어지는 게 아닐까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A: 우리의 도덕적 나침반이 종교에서 나온다고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끔찍한 겁니다. 우리의 도덕적 나침반이 종교에서 나와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도덕적 나침반은 종교에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성경이나 코란을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도덕적 나침반을 얻게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게 끔찍한 건, 예를 들어 안식일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성경이나 코란이 도덕적 나침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을 어겼다고 돌로 사람을 쳐 죽이는 행위는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맘에 드는 경전 구절만 취하고 그렇지 않은 구절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은 경전 구절을 취하고 나쁜 구절을 버리는데 사용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은 바로 비기독교적이고 비종교적인 기준입니다. 그 기준은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현대인들을 인도하는 도덕적 나침반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나침반이란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와 상관없이 그들이 살고 있는 세대와 세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초기에 살고 있으므로 지금의 도덕적 나침반은 100년 전이나 200년 전의 도덕적 나침반과 상당히 다릅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덜 인종차별을 하며 훨씬 덜 여성차별을 합니다. 우리는 그때보다 동물들에 훨씬 더 관대하며 우리가 도덕적 나침반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모든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 관점이 바뀌었지만 그 변화는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Q: 과거 수년 간 영국과 미국을 수 차례 왕래했는데 두 나라에서 종교의 위치가 상당히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A: 미국은 서구 선진국에서 가장 종교적인 나라로 악명이 높습니다. 왜 그런지는 다소 미스테리입니다. 영국에서 기독교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슬람은 그렇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서구 유럽에서 기독교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수치를 들여다 보면 종교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며 자신이 아무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20%대나 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모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종교적인 로비에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고 느끼는 이곳[미국]의 정치가들은 이 높은 수치을 들여다보고 미국사람들이 전부 종교적인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Q: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훨신 더 종교적인 이유가 조금은 미스테리라고 말씀했는데요. 왜 이게 미스테리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런 성향의 질문과 관련하여 여러 명의 독자들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궁금해합니다.
A: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걸로 왜 미국이 영국과 그렇게 다른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타당성이 있는 제안은 영국과 영국처럼 대단히 비종교적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국교가 있으며 이로 인해 종교가 사람들을 따분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헌법이 국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게 바로 종교가 인기를 끌어 온 이유 일 거라는 겁니다. 종교는 미국에서 큰 비지니스였습니다. 종교는 자유 기업이 되어 경쟁관계에 있는 교회들이 더 많은 회중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데다 특별히 세금 면제를 받는 것도 관계가 있습니다.
Q: 어떤 독자들은 당신이 무신론을 매우 '공격적으로 전도'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이것을 의무로 보십니까? 마치 일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신론자의 견해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A: ‘의무’라는 말은 웃기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제가 무신론을 ‘공격적으로 전도’할 때는 고래 고래 소리를 내가며 하는 게 아니라 조용하고 침착한 이성의 목소리를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성은 우리 편입니다.
Q: 어린아이들에게 종교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지요? 사실 독자 중 한 명은 18살이 안된 애들은 교회에 나오는 걸 당신이 원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A: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금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자녀들도 천주교인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건 나에겐 일종의 아동학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알 수가 없으니까요.
(부모가 실존주의자나 논리적 긍정주의자라고 해서 그 자녀를 두고) ‘네 살 먹은 실존주의자’니 ‘네 살 먹은 논리적 긍정주의자’니 하는 말을 쓴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지 안다면 ‘네 살 먹은 천주교인’이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부모의 믿음에 기초해 아이에 종교적 딱지를 붙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 우리는 이게 종교일 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에 관한한 왜 종교는 무임승차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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