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26

봄비 - 변영로

봄비 변영로 / 박인수 봄비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Loss and Gain (잃은 것과 얻은 것) - 롱펠로우

Loss and Gain (잃은 것과 얻은 것) - 롱펠로우 - 내 이제껏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획득한 것 저울질해 보니 자랑할 게 없구나. 하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좋은 의도는 화살처럼 과녁에 못 닿거나 빗나가 버린 걸 내 알고 있으니. 그러나 누가 감히 이런 식으로 손익을 가늠하랴. 패배는 승리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썰물이 나가면 분명 밀물이 오듯이. When I compare, What I have lost with what I have gained, What I have missed with what attained, Little room do I find for pride. I am aware How many days have been idly spent; How like an..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즈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

아를르의 여인 - 알퐁스 도데

아를르의 여인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 1840년 남프랑스 님에서 태어났다. 시적 정서가 깃든 상상력으로 짙은 인간미와 고향 프로방스 지방에 대한 애정을 담은 인상주의 성향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특히 단편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통찰력과 감수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 , , , , , 등이 있다. 어떤 농가에 얽힌 사연 내 방앗간에서 내려와 마을로 가노라면 길가에 서 있는 어떤 농가를 지나게 된다. 그 집은 넓은 정원에 팽나무가 심어져 있고, 어느 모로 보나 전형적인 프로방스 지방 소지주의 집이다. 붉은 기와를 얹었고, 넓은 갈색 벽에는 창문이 여기저기 열려 있었다. 창문보다 더욱 높이 올라간 곳에는 바람개비와 짚더미를 실어 올리는 활차(滑車)가 있었..

안개 - 헤르만 헤세

안개 -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가 다 혼자로구나! 나의 삶이 밝았던 때에는 세상엔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 자욱한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어라.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도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인 것을!

눈송이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눈송이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대기의 가슴에서 구름 옷자락 흔들리며 헐벗은 갈색 삼림지 위로 추수 끝난 버려진 밭들 위로 말없이 가벼이 천천히 눈이 내린다. 우리의 흐릿했던 공상 문득 어떤 거룩한 모습 취하듯 괴로운 가슴이 하얀 얼굴로 고백을 하듯 괴로운 하늘이 슬픔을 내비친다. 침묵의 음절로 천천히 씌어진 이것은 대기의 시. 구름의 품에 오랫동안 감춰둔 이것은 절망의 비밀 이제야 숲과 들에 소근소근 얘기하네. Snow-Flakes - Henry Wadsworth Longfellow Out of the bosom of the Air Out of the cloud-folds of her garments shaken, Over the woodlands brown and bare, Over the harv..

눈 내리는 날의 연가 - 김광련

눈 내리는 날의 연가 김광련 눈 내리는 날이면 우연히 그대를 만날 것 같아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서봅니다 첫 눈 내리던 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하얀 눈 꽃송이 받아들며 사랑을 속삭이며 영원을 약속하던 그대여 차곡차곡 쌓인 그리움은 떨어지는 눈송이만큼 가득하고 전선을 타고 흐르던 따스하던 음성, 정겨운 그 눈빛 아직 귓가에 맴돌고 있는데 그대는 아니 오고 칼바람만이 이 내 가슴 속 헤집고 다닙니다. 오늘도 잿빛 하늘만 쳐다보며 눈 내리기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그대를 기다리며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서 있습니다.

모란동백 - 이제하 시 / 조영남 노래

모란동백 / 이제하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꾹이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해도 또 한번 동백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조영남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선택하고 싶은 노래는 모란동백이라고 한다. 시인인 이제하가 자신의 시에 본인이 멜로디를 붙인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호소가 시간이 지날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