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한국사회는 2010년 11일 길상사에서 입적(入寂)하여 동월 13일 송광사에서 다비식(화장)을 치룬 박법정(朴法頂) 스님을 추모하는 일부 고해 대중들이 다투어 추모사를 하고, 눈물짓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 임기 내내 자신이 목숨 바쳐 보위(保衛)해야 할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안보정서는 아랑곳없이 대북 퍼주기로만 임기를 마치다시피하고 죽은 DJ, 노무현에게 보였든 인정 넘치는 굿판 같다. 법정 스님을 향한 추모사는 신화로 변할 지경에 이르렀다. 왜 이러한 현상이 오는 것일까? 고해대중의 일평생 자나 깨나 화두는 돈이다. 고해대중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론(論)에 감격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양반이 되고 천민이 되고, 성공과 실패자가 되고 천인공노할 범죄자가 되고, 남자는 지조를 꺾고, 여자는 정조방매(貞操放賣)까지 하는데, 무소유론에 심취하여 책을 구매하려고 다퉈 경쟁하고, 소장하여 두고두고 독서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제마음대로 돈을 벌지 못하거나, 돈은 많지만, 보시하기는 싫고, 마음으로라도 무소유사상속에 '버리고 떠나며', '맑고 향기롭게' 관념적으로 살아보겠다는 심산(心算)인가? 아니면 돈에 대한 집착을 떠나 보시를 시작하려는 것인가?
60년 중반, 필자는 해인사에서 법정 스님을 처음 해후했다. 그는 해인사 해우소(解憂所) 가는 길 옆 건물의 끝 방에 기거하면서 책을 읽고 글쓰기 공부에 매진했다. 그의 글쓰기는, 첫째, 사찰환경과 자연에 대한 찬미였다. 둘째, 무소유, “내 호주머니는 먼지뿐일세”식의 글을 썼다. 그다음, “버리고 떠나기”, “맑고 향기롭게”를 연속 발표했다. 그는 마침내 신조어(新造語)의 글쓰기로 대성공했다. 명성과 돈이 따랐다. 돈 많은 여신도들이 후원인이 되려했다. 예나 지금이나 승속(僧俗)간에 유명인사에게는 일부 여성들이 설치는 것 아니든가? 해인사 밑 숙대 재학생인 미스 유가 정성을 다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노래에 감동받은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법정 스님에게 1200억 상당의 대원각(大苑閣)의 부동산을 바치는 요정주인이 등장했다. 15세 동기(童妓)출신이다. 그녀는 70년대 일인(日人)들을 위한 한국 제일의 기생관광의 대모인 대원각 주인 김영한씨이다. 그녀는 대원각에서 가난한 한국의 딸들에게 일인들을 위해 가무(歌舞)하게 하고 술 따르게 하고 몸 팔게 해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을 만나 업보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갈 수 있다는 법어에 일평생, 술 팔고, 몸 팔아서 번 돈을 일순에 바치는 결심을 했다고 전한다. 여성은 종교적으로 겁을 주면 큰돈을 내 놀 수 있다는 것을 필자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법정 스님에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가 후원회장으로 등장했다. 불교계는 물론 세간에 부러움의 화제가 일어났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전 삼성병원에서 입원가료를 받아왔는데, 병원비 6천2백만원을 홍라희 여사가 전액 지불했다는 언론보도는 또 한번 세인을 경탄케 했다. 어느 정부 고급 공무원 부인은 무소유를 보고는 감동하여 남편의 3개월치 월급의 돈을 남편 모르게 법정 스님에게 송금했노라는 자랑을 하며, “돈이 없는 분이라서 보냈는데 잘했지요?”라고 필자에게 문의해왔다. 남편은 뼈골이 빠지게 돈 벌어 가정에 내노니 부인은 괴상한 내조를 하는 것이다. 승려의 “호주머니에 먼지뿐일세”가 돈 많은 여신도들의 송금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필자는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내 호주머니에는 먼지뿐일세”의 무소유 노래는 급기야 불교계를 뒤흔들었다. 부지기수의 승려들이 여신도들을 상대로 무소유 노래를 부르는 전성기를 일으킨 것이다. 법정 스님처럼 1000억이 넘는 보시를 받을 수 있고, 재벌회장 부인을 후원회장으로 만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사행심이었다. 어쨌든 “호주머니에 먼지뿐일세”의 노래는, 인정 많은 보살님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신통한 주술의 힘을 보였다. 그러나 기가 찬 것은 백화점을 소유한 모 승려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신도들에게 자신의 무소유사상을 강변하며 신도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는 소식이다. 사기협잡이요, 추태가 아닌가? 진짜 무소유를 실천하는 승려들은 무소유를 말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은 진짜 무소유한 일생을 살았을까? 모두 버리고 떠나서 그의 호주머니에는 먼지뿐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불교계의 어느 승려가 따를 수 없는 유소유(有所有)의 행복을 누렸다. 무소유, 그의 희망사항을 노래했다고 보면 될까? 그는 세계 여행에 자주 나섰다. 그는 출판사에 연락, 인세(印稅)를 챙겼다. 많은 액수의 인세와 신도들의 보시금, 사찰 방문 때의 보시금, 길상사에서 회주스님께 드리는 약값조의 보시금 등으로 어렵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신화 같은 전설을 만들어 우상화하여 이득을 보려는 출판사나, 일부 승려들이 낡은 옷 한 벌을 세상에 보여주며, “이것이 그분의 전 재산이라오” 라는 홍보는 불교계에서 늘 써먹는 진부하고 고전적인 홍보로 고해대중은 식상해 한지 오래이다. 인정 속에 눈물로 석별하는 고해 대중에게 진실해야 한다.
출처 : http://www10.breaknews.com/sub_read.html?uid=126443§ion=sc1§ion2=%C1%A4%C4%A1%C0%CF%B9%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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