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악들/70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이장희

elohim 2015. 3. 21. 05:10

영화 "별들의 고향" (1974)







최인호가 20대에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소설 ‘별들의 고향’(1973년)은 1974년 그의 고교 친구인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4월 26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105일간 장기상영을 하며 서울에서만 4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초유의 성공을 거둔다.

1970년대 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아무런 재주 없는 우리 여동생이나 누이 같은 처녀들이 공장 노동자·버스 안내원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벌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했다.

암울한 정치 상황과 교환가치를 앞세우는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물신주의와 인간 소외를 불러왔다. 먹고 살기 위해 모두가 돈만 추구하는 사이에 자본주의의 음습한 어둠 속 인권의 사각지대에 소외된 사람 중 술 취한 사람들의 노리개로 때론 화풀이 상대가 되기도 하는 호스티스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별들의 고향'의 경아, 오경아였다.

작가 최인호의 말대로 ‘경아는 우리가 함부로 소유했다가 함부로 버리는, 도시가 죽이는 여자’였다.





영화는 도입부가 지나고 나면 무분별한 생활 탓에 성병에 걸린 문호(신성일)가 병원 치료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의사로부터 치료는 끝났지만 여자관계를 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은 문호가 바에 앉아 술을 마시며 스케치를 하고 대상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혼자 앉아 술 마시고 있는 경아다.

문호는 그녀의 모습을 스케치해서 바텐더를 통해 경아에게 건네준다. 그 후 두 사람은 경아가 근무하는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서 다시 바로 온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경아는 문득 첫 남자인 영석(하용수)을 떠올린다. 경아가 사무실에서 떨어뜨린 펜을 영석이 주워 건네면서 두 사람의 연애는 시작된다.
이렇게 영화는 현재의 문호와 경아의 관계에서 과거를 기억하게 해주는 말이나 장면이 나오면 경아가 옛일을 회상하는 구도로 되어 있다.

경아와 영석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아이를 갖게 되어 낙태하고 영석에게 버림받는다.
낙태한 과거를 숨기고, 전처와 사별한 결벽증이 심한 중소기업 사장 만준(윤일봉)과 한 결혼도 낙태한 과거가 탄로 나 파경에 이르고, 건달이자 세 번째 남자인 동혁(백일섭)을 피해 마지막이자 진심으로 사랑했던 화가이며 대학강사인 문호의 아파트로 들어온다.

경아는 문호의 모델을 하며 잠시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늘 불안한 마음에 심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서서히 시들어 가고, 문호가 그런 경아의 피폐한 삶에 못 견뎌 하자 경아는 말없이 문호의 곁을 떠난다.

1년 후 동혁이 배를 타고 멀리 떠난다며 경아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자 문호는 경아를 찾아간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한 해의 마지막 밤이다.
문호는 경아가 끓여 주겠다는 라면도 술도 마다하고, 피곤하다며 경아의 방에 눕는다.
둘이 누워 하는 대사가 지금도 회자할 정도로 유명해진 대사다.

"오랜만에 같이 누워 보는군."
행복해요, 더 꼭 껴안아 주세요. 여자란 참 이상해요. 남자에 의해서 잘잘못이 가려져요. 한땐 나도 결혼을 하고 행복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어요.
(지나간 것은 꿈에 불과해.)
아름다운 꿈이에요. 내 몸을 스치고 간 모든 사람들이 차라리 사랑스러워요.
……………………

다들 뭘 하고 있을까, 아저씨만 여기 계시는군요.
(…행복하게 지내겠지…)
………………………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흔적도 없이 이별을 하곤 해요.
(떠나야 하니까)
날이 밝으면 아저씨도 떠나가겠죠.
(그럴 거야 어쩜……)”


그리고 눈 내리는 새벽 문호는 약간의 돈을 잠든 경아의 머릿맡에 두고 조용히 떠난다. 문호는 떠나고, 경아는 혼자 왕대포 집으로 간다. 낯선 남자가 치근덕거리고, 경아는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또다시 술집으로 돌아와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선다.
경아는 혼자 눈밭 위를 걷는다. 수면제를 먹고, 물 대신 눈을 떠먹는다.
....눈을 계속 집어먹으며 약들을 입안에 털어 넣고 눈밭에 쓰러진다......
그런 경아의 눈앞에 문호가 경아~ 하면서 달려오는 환상....
하늘에서 종이학이 떨어진다.
이런 데서 잠들면 안 된다고 되뇌며 경아는 눈 위에 쓰러져 잠이 든다.
경아는 눈밭에서 그렇게 짧은 인생의 막을 내리고 만다.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받는다고 믿었지만, 모든 남자가 다 배신하고 그녀에게서 떠나간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렸지만.....





영화 전체를 통해 주제곡처럼 흐르는 음악은 이장희가 부르는 슬로 고고 리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다.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이장희는 전설의 세션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함께 이 영화의 음악작업을 했는데 그 둘은 포크 음악에 대한 뛰어난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의 성공은 그 둘이 엮어낸 OST에 있었다고 해도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과 다르게 앳 띄고 맑은 음색의 윤시내가 부르는 ‘난 열아홉 살이에요’와 이장희가 거친 목소리로 부르는 ‘한 잔의 추억’ 등 별들의 고향 OST는 대부분 큰 성공을 했다.

1970년대는 청바지와 장발, 생맥주와 통기타 그리고 포크 음악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청년 문화"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용어이지만)가 태동하던 시기이고, 젊은이들은 구미(歐美)의 신문물을 빠르게 흡수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내며 기성세대들과 충돌하던 때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가치관은 혼란스러웠고 경제발전,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 등, 변혁의 시대 속에서 젊은이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좌절을 느꼈다.

그 좌절감은 영화 속 경아라는 여인이 순수한 사랑의 이상과 동물적 본능 -남성 중심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감정이입되어 같이 슬퍼하고 분노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유에 목 말랐던 젊은이들은 자신들과 정서가 통하는 이런 부류의 영화와 포크 음악에 열광했는데, 그 키워드는 젊음과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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