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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환시대의 논리 - 리영희

elohim 2010. 12. 8. 02:26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독재 항거에 ‘지적 대들보’로
리영희의 저서

80년대엔 핵·통일로 관심 확대

90년대엔 ‘사회주의 붕괴’ 성찰

한겨레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 6일 오후 <리영희 평전> <대화> 등 고 리영희 선생 관련 서적 코너가 마련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나는 그 책을 밤새워 읽었고, 그 후에도 읽고 또 읽었다. 그 책을 먼저 발견한 동료가 내게 권했던 것처럼 나 역시 만나는 동료·후배들마다 그 책을 권했다. 그러나 그 책은 우리가 지닌 상식에 어떤 것을 보태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상식을 버려라. 네가 진실로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은 허위의식, 그러한 미신들을 네 머릿속에 주입한 이 우상들의 세계의 본질을 꿰뚫는 새로운 눈으로써 이 세계를 다시 바라보라.’ …그래서 진실을 안 데 대한 최초의 반응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일 수밖에 없었다.”(김세균 서울대 교수)

‘그 책’을 읽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같은 대학 조희연 교수는 “이미 나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냉전적 의식 및 사고의 깊은 중독상태에서 벗어나는 지적 해방의 단비를 맛보았다”고 했다.

1974년에 나온 리영희의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아시아·중국·한국>은 새로운 민주주의 전사, 우상파괴자의 등장을 알린 그의 첫 단행본이다. 이 책은 유신 억압체제하에서 “‘전논’이라는 은어로 불리면서 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 ‘해일과 같은’ 폭발력으로 퍼졌다.”(김삼웅 <리영희 평전>)

한국 민주화와 변혁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주역들 다수가 그 세례를 받았다.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위한 미국의 ‘통킹만 사건’ 조작 사실을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와 그 사실을 보도한 <뉴욕 타임스>의 보도 태도, 권력의 언로 차단과 비밀주의, 자유 억압이 결국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논한 그 책 제1장은 우상파괴자 리영희의 존재방식에 대한 예시였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는 머리말이 실린 <우상과 이성>(1977년, 한길사)은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이후의 세상 변화까지 담은 ‘속편’적 성격을 지닌다. 광복 32돌의 반성과 중국이란 나라, 베트남전 총평가, 냉전과 독일 통일 문제 등을 담아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이 책 두달 전에 <8억인과의 대화>(창작과비평사)가 나왔다. 리영희의 중국연구 성과를 담은 <8억인과의 대화>는 편역이었음에도 출간 약 2달 만에 판매금지 조처가 내렸다. 그 책이 판금당한 바로 그날 <우상과 이성>이 출간됐다.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던 그때 당국은 그 이념적 배후로 리영희를 지목했고 세 책은 그를 반공법으로 옭아넣는 구실이 됐다. “1977년 11월23일 아침 7시, 나는 집에서 세 사람의 낯선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서재로 올라가 수백권의 책을 훑어 꾸린 다음 ‘잠깐 조사할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가 끌려간 곳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다.

1980년대 들어 그는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년, 동광), <분단을 넘어서>(1984년, 한길사), <역설의 변증-통일과 전후세대와 나>(1987년, 두레)를 잇따라 내며 제3세계로 시선을 더욱 넓히는 한편 핵 문제와 통일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다. 80년대 저작 중 <역정>(1988년, 창비)은 특별한 책이다. 문사기질의 그가 경성공립학교 전기과와 국립해양대 항해과에 들어가게 된 삶의 궤적과 백범 김구를 연모하며 4·19 혁명에 뛰어들었던 얘기 등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自由人, 자유인>(1990년, 범우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년, 두레) 등 그의 ‘90년대 저작’들에는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를 지켜봐야 했던 그의 성찰과 고뇌가 배어 있다.


2005년에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와 대담 형식으로 엮은 회고록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리영희의 삶과 사상의 종합편이다. 원숙과 깊이, 그리고 삶에 대한 달관의 경지까지 느낄 수 있는 <대화>는 <전환시대의 논리>의 문제의식이 세상과의 사투를 벌이며 마침내 당도한 변증법적 종합이라 할 수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출 처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24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