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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추장의 편지 그 오해와 진실

elohim 2010. 12. 12. 15:17


아메리카 인디언, 시애틀 추장편지.




-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와 인디언 멸망의 역사 -

200여년전 아메리카 대륙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백인들은

동부지역에서 서부지역을 향해 삶의 터전을 넓혀 나가면서

실질적으로 영토확장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원주민

인디언들과 충돌하여 싸움이 벌어지지만 결국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뜻대로 백인들의 땅, 백인들의

시대를 열어 나갔습니다.

백인들의 시각에서는 새로운 영토개척이고, 문명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

왔던 원주민 인디언 입장에서 보면, 인디언 살육과, 착취와

강탈당하는 피비린내 나는 종족고난의 역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서부개척사는 곧 인디언 멸망사라는 이야기가

함께 붙어 다닙니다.



아득한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주 오래된 종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천년을 이곳에서 살면서, 초크타우, 체로키, 수우,

나바호, 이로키족들의 문화를 비릇한 위대한 인디언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백인들이 밀려오며 인디언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살육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한사람이 살수있는 시간만큼도 채 안되는 사이에,

백인들은 온 땅을 자기들 소유로 차지해 버렸습니다.

인디언들에게는 손바닥만한 땅을 내주며 그곳에 가서살라고했습니다.



기나긴 "인디언과의 전쟁"중에서 마지막 전투가 끝나갈 무렵,

1854년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크린 피어스는 지금의 워싱턴

주에 살고있던 인디언 수꾸와미쉬족의 시애틀 추장에게

땅을 팔 것을 종용했습니다.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을 백인들이 차지하는 대신, 그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보전지구를 정해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팔지 않아도 결국에는 빼앗아갈 것임을 잘 알고있는 시애틀

추장은 프랭크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답장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늘날 "시애틀(Seatlle)추장의 선언"으로 알려지고 있는

편지는 인간과 자연이 원래 한몸이라는 인디언의 오랜

믿음을 담은 대 서사시로, 소위 문명화를 위해 자연을 거침

없이 허물어뜨려온 현대의 인간들에게 커다란 부끄러움과

함께 자연과 평화로운 삶에 대한 깊은 깨우침을 주고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안추장 시애틀이 보낸 편지

워싱턴의 대추장(프랭크린 피어스 대통령을지칭)이 우리땅

사고싶다는 제안을 보내왔다.

대 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내왔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들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있다.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밝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속에 흐르는 수액들은 우리 홍인(인디언 종족들을 가리킴)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맥,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의 대 추장이 우리땅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모든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 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취는 신령스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이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힐 것이다.





워싱턴주 시애틀(Seatlle)에 있는 인디언 추장 시애틀(Seatlle)의 동상

출 처 : viva 1143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viva1143?Redirect=Log&logNo=100103906648

환경론자 "시애틀 추장 연설"의 진실은?

출 처 : http://blog.ohmynews.com/cjc4u/250985



물신주의를 비판하는 시애틀 추장의 편지가 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도 즐겨 애용하시고, 류시화 선생께서 펴낸 책에도 실려 있고, 저도 그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수차례 글에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 시애틀 추장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 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 우리가 대지를 팔아야 한다면,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그 공기 또한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공기이며, 모든 아침마다 우리가 맞이하는 것도 그 공기다. 바람은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과 마지막 숨을 주었다. 그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다 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들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거미줄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 대지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에게 속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이 연설의 진실이 사실과 다르다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물론 충격입니다만, 한번 요약해 보았습니다.

“백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시애틀Seattle이라고 이름을 고쳐 부른 수콰미시족의 세알트Sealth 추장은 결국 미합중국 정부에 자신들의 땅을 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거부하면 백인들은 강제로라도 이 땅을 빼앗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시애틀 추장의 아버지인 슈웨아베 추장 시설에 두와미시족과 수콰미시족이 사는 땅으로 들어와 살았다. 그들은 서로 평화롭게 잘 지냈다.

… 이렇듯 인디언과 백인 입주민들은 대체로 평화롭게 이웃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랭클린 피어스 미 대통령의 요구가 인디언들에게 통보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땅을 팔고 퓨젓사운드 만의 한 섬에 있는 보호구역으로 이주하라는 것이다. 시애틀은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1854년 12월 아니면 1855년 초였을 것이다. 시애틀 추장은 매각 협상 막바지 무렵에 미국 대통령을 향해 연설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없고, 아이작 스티븐스 주지사만 참석한 자리였다.”

연설자료는 오직 하나밖에 남아있진 않습니다. 인디언 말을 할 줄 안다는 헨리 A. 스미스 박사가 추장의 드와미시어 연설을 받아 적은 자료입니다. 연설내용은 실제 연설이 있었던 날로부터 33년이 지난 1887년 10월에야 언론에 공개됩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생태학적 경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로 인디언 부족의 슬픈 이별을 노래하고, 인디언의 생존을 걱정합니다. 물론 땅과의 연대성은 강조됩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1960년 윌리엄 애로스미스라는 교수가 연설문을 수정합니다. 이때까지도 “마지막 나무가 베어져나가고, 마지막 강이 더렵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달으리라. 돈을 먹고 살수는 없다는 것을” 부분은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홈(home)'에서 다시 한번 변용을 거친답니다. 여기서도 앞의 문장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방송을 계기로 시애틀 추장은 환경운동의 대변자로 끌어올려졌습니다. 방송작가 테드 페리의 작품입니다. “땅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의 일부”라는 말도 페리가 지어낸 말입니다. 그러다가 환경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끌게 되고 텍스트의 변용이 다시 한번 있게 됩니다. 마침내 새로운 버전이 나타납니다. 앞의 문장입니다. 이 버전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1970년대 초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앞의 유명한 문장은 그린피스의 스티커와 캠페인에 사용되면서 더욱 유명해집니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져나가고, 마지막 강이 더렵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달으리라.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런데 시애틀 추장이 정말 무슨 말을 했는지, 실제로 그런 연설을 하기는 했는지를 두고 1990년대 초에 비판적인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지도자들도 그런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이 유명한 금언에 대한 새로운 설명들이 쏟아졌는데, 지금은 이것이 크리족 인디언의 예언이라는 견해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마지막 이야기는 혹여라도 읽는 분들을 실망시킬까봐 걱정됩니다만, 그래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려놓아야 할 것 같아서 적어놓았습니다.

"인디언 영토의 양도와 관련해서 미국 정부의 두와미시 부족 사이에 맺은 포트 엘리엇 조약 이후 곧 인디언 봉기가 일어났다. 3년 간 지속된 반목과 적대 행위 속에서 시애틀 추장은 한결 같이 백인 주민들 편에 섰다.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1866년 노아 시애틀이라는 이름으로 여든 살의 일기를 마감했다."

이상은 헬게 헤세 (Helge Hesse)란 분이 쓰고, 박종배 님이 옮긴 북스코프 출판사의 <천마디를 이긴 한마디> 297~302면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