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 김정호
아주 오래된 습관 하나,
해마다 이때쯤 되어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으면 문득 문득 떠올라 나도 모르게 읊조리는 국어 시간에 배웠던 글 두조각,
그리고 노래 한자락.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페이터의 산문"에 인용되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의 어느 대목.
그리고 어느 누구가 부른 것보다 김정호가 노래한 "날이 갈수록".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人跡)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 그래서, 벽은 헐어서 흙이 떨어지고, 어느 문설주의 삭은 나무 위에 거의 판독(判讀)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阿諛者)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뜯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가 다 한 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 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 난 것으로, 얼마 아니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통한 것이라고는 다만 그들의 목숨이 짧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치 그들이 영원한 목숨을 가진 것처럼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하느냐?
얼마 아니하여서는 네 눈도 감겨지고,
너의 죽은 몸을 의탁하였던 자 또한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에 가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있어 네가 내일, 길어도 모레는 죽으리라고 명언한다 할지라도,
네게는 내일 죽으나 모레 죽으나 별로 다름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너는 내일 죽지 아니하고, 일 년 후, 이 년 후,
또는 십 년 후에 죽는 것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도록 힘쓰라.
만일 너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는 때문이니까,
너는 그것을 쉬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심오한 내용들을 고등학교 2학년생이 배우다니.....어쨋든....
나의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지독히 중독성있게 자극하였던 저 구절들은 이후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도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가을날의 향연이 되어 늘 가슴속에 잔잔하고 아련하며 애잔한 그리움의 잔상들을 만들어 그리하여 해마다 이 때쯤이면 머리속과 입가를 맴돌게 해준다...
날이 갈수록/김정호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하늘엔 조각구름
무정한 세월이여
꽃잎이 떨어지면
젊음도 곧 가겠지
머물 수 없는 시절
시절 시절 우리들의 시절
루루루루 세월이 가네
루루루루 젊음도 가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루루루루 세월이 가네
루루루루 젊음도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