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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의 미몽에 사로잡혀 집권의 꿈 포기하다
elohim
2010. 12. 8. 02:54
햇볕의 미몽에 사로잡혀 집권의 꿈 포기하다
<칼럼>돈 주고 구걸한 거짓평화를 도그마로 붙들고 있는 민주당
햇볕은 수단이지 목적될 수 없어…교조적 대북정책 집권 불가능
햇볕은 수단이지 목적될 수 없어…교조적 대북정책 집권 불가능
김영명 칼럼니스트 (2010.12.07 08:35:32)
양치기가 어미를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늑대 새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양치기는 어린 늑대가 가엾어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쌍한 녀석, 내가 잘 돌봐줄게…." 양치기는 늑대 새끼를 정성껏 보살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녀석을 잘 기르면 나를 주인으로 알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양들을 흉악한 늑대들로부터 잘 지켜주겠지.’
양치기의 보살핌으로 늑대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어른 늑대가 되었다. 어느 날 외출했던 양치기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살펴준 그 늑대가 양치기네 양들을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겸 작가 라 퐁텐이 쓴 ‘늑대와 새끼양’이란 우화다.
1998년 김대중 좌파정권이 출범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0년대 초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고립무원이 된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게 4억5천만 달러란 거금을 뒷주머니에 찔러주고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고 나서 해마다 쌀이며 비료며 농기구와 의약품, 심지어는 현금까지 김정일의 손에다 듬뿍듬뿍 쥐어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제아무리 호전적인 김정일 집단이라 해도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으면 변화를 일으켜 한반도에서 평화가 실현될 것이란 믿음에서였다. 돈으로 평화를 사겠다는 것이었다.
양치기(남한)가 늑대 새끼(북한)를 정성껏 돌보면(대북지원) 흉악한 늑대(전쟁)들로부터 자기 집 양들(한반도)이 잘 지켜질 것(평화)이란 믿음에서 그렇게 했다. 이른바 ‘햇볕정책’이었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한다는 햇볕정책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김대중 정부가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며 원용한 ‘햇볕정책’의 원전은 이솝우화 ‘나그네와 햇볕’이었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결과는 ‘나그네와 햇볕’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라 퐁텐의 ‘늑대와 새끼양’이란 역효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적극 추진하던 1999년 6월과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지원을 대폭 늘렸던 2002년 6월 김정일 집단이 일으켰던 1·2차 연평해전이 그러했다. 그 뒤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두 차례의 핵실험이 그러했으며, 가까이는 지난 3월 천안함 폭침과 지난달 23일의 연평도 포격이 또한 그러했다.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겠다며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이 추진한 햇볕정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거짓평화였다. 그리고 잃은 것은 막대한 국고와 국가안보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햇볕정책의 자기도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햇볕타령을 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그 원인을 현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돌리면서 이를 포기하고 햇볕정책을 계승하라고 주문한다.
누구는 “연평도 포격 사건은 역설적으로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이 평화를 보장하는 유효한 정책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누구는 “민주정부 10년 햇볕정책의 제1목적은 평화였다”며 햇볕정책으로 이 땅에 이 정도의 평화가 유지됐다고 주절댄다.
햇볕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의 핵심 담론은 평화였다. 그러나 민주당이 표방하고 내세운 평화는 위장된 정치 목적의 평화주의일 뿐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다. 평화는 상대적이어서 나 혼자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상대와 함께 심고 가꾸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는 남쪽 혼자만의 힘으로 유지될 수 없다.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어서 함께 유지해가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일방적인 대북 지원으로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햇볕정책은 몽상이었고 망상이었다.
민주당은 햇볕정책의 자기최면에 걸려 김정일이 원하는 대로 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면 한반도에 평화가 실현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민주당은 햇볕정책이 추진되던 그 시절에는 북한의 도발이 없었다며 햇볕정책을 옹호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햇볕정책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며 흥얼대고 있던 그때 북한은 핵을 만들고 미사일을 개발했다. 따뜻한 햇볕(대북지원)을 받아가며 흥겨운 콧노래 속에 자기를 보살펴준 양치기의 양들을 잡아먹을 궁리를 했다.
그러는 사이 좌파정권 10년이 마감되고 2008년 이명박 우파정권이 들어섰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좌파정권이 왜곡시킨 남북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것이 북한을 자극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깼다며 햇볕정책을 계속하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뒤집어보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화해 협력을 계속하라는 말로 이해된다. 햇볕정책을 계승하여 김정일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돈을 주고 평화를 사라는 것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돈을 주고 평화를 구걸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주고 산 평화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북한 도발이 이를 증명한다. 좌파정부는 햇볕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거짓평화를 참 평화로 착각하면서 북한에다 퍼주고 또 굽실거리며 평화를 구걸했다. 하지만 우리가 평화를 사겠다고 준 돈은 부메랑이 되어 핵과 잠수함, 그리고 해안포와 곡사포로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우리는 “평화는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웠다. 돈으로 거짓평화를 살 것이 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으로 ‘정의로운 평화’를 획득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강력한 군사력이야말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임을 터득했다. 평화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전쟁억지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생은 컸지만 소중한 교훈이었다.
지난 좌파정권 10년 간 추진한 돈으로 평화를 구걸한 햇볕정책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만 도우면서 거짓평화만 얻었다. 우리는 엄청난 돈을 주고도 평화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남북한 간의 존재양식을 대립과 갈등에서 화해와 협력으로 바꿔 북의 개방을 유도하고 이를 통일의 기틀로 삼겠다는 햇볕정책은 그래서 빈 껍데기로 남았다.
오죽하면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민주당 내 중도파 일각에서조차 비판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수정론까지 나오고 있겠는가. 지난달 30일 손학규 대표는 "햇볕정책이 모든 것을 다 치유하고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는 말까지 했다.
그렇다. 민주당은 이제 햇볕타령을 멈춰야 한다. 완벽한 정책은 없다. 한 때 옳았던 정책도 상황이 바뀌면 바뀌어야 한다.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어떤 정책이 ‘무결점’의, 그래서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책이 아니다. 일종의 종교요, 도그마다.
하나의 도그마가 수백, 수천 년을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하늘과 해와 달과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천동설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을 부인하면 신을 모독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천동설과 창조론은 지동설과 진화론으로 자리바꿈됐다.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도그마도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군림할 수 없게 됐다. 도그마에 빠져 있으면 낙오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도그마는 다른 주장이 설 리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도그마에 빠진 사람은 위험하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그런 사람을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했다.
지난 10년 간 좌파정권이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데서 실패했다. 민주당은 햇볕이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 수단인데도 그것이 마치 목적인 양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데도 지원 외에 대안 없다는 ‘햇볕 도그마’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좌파정부는 남북한 간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나가면 평화가 저절로 올 것으로 믿었다. 그리하여 남북 철도 연결과 개성공단, 그리고 금강산 관광 등을 평화의 상징인양 선전해왔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돈줄 역할을 하는데 기여했을 뿐 이번 연평도 도발에서 보듯이 평화정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확인됐다.
민주당은 하루라도 빨리 실패한 교조적 대북 햇볕정책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차기 수권정당으로 이 나라 제1야당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글 / 김영명 칼럼니스트
출 처 : 데일리안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29352
양치기의 보살핌으로 늑대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어른 늑대가 되었다. 어느 날 외출했던 양치기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살펴준 그 늑대가 양치기네 양들을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겸 작가 라 퐁텐이 쓴 ‘늑대와 새끼양’이란 우화다.
1998년 김대중 좌파정권이 출범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0년대 초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고립무원이 된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게 4억5천만 달러란 거금을 뒷주머니에 찔러주고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고 나서 해마다 쌀이며 비료며 농기구와 의약품, 심지어는 현금까지 김정일의 손에다 듬뿍듬뿍 쥐어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제아무리 호전적인 김정일 집단이라 해도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으면 변화를 일으켜 한반도에서 평화가 실현될 것이란 믿음에서였다. 돈으로 평화를 사겠다는 것이었다.
양치기(남한)가 늑대 새끼(북한)를 정성껏 돌보면(대북지원) 흉악한 늑대(전쟁)들로부터 자기 집 양들(한반도)이 잘 지켜질 것(평화)이란 믿음에서 그렇게 했다. 이른바 ‘햇볕정책’이었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한다는 햇볕정책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김대중 정부가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며 원용한 ‘햇볕정책’의 원전은 이솝우화 ‘나그네와 햇볕’이었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결과는 ‘나그네와 햇볕’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라 퐁텐의 ‘늑대와 새끼양’이란 역효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적극 추진하던 1999년 6월과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지원을 대폭 늘렸던 2002년 6월 김정일 집단이 일으켰던 1·2차 연평해전이 그러했다. 그 뒤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두 차례의 핵실험이 그러했으며, 가까이는 지난 3월 천안함 폭침과 지난달 23일의 연평도 포격이 또한 그러했다.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겠다며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이 추진한 햇볕정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거짓평화였다. 그리고 잃은 것은 막대한 국고와 국가안보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햇볕정책의 자기도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햇볕타령을 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그 원인을 현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돌리면서 이를 포기하고 햇볕정책을 계승하라고 주문한다.
누구는 “연평도 포격 사건은 역설적으로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이 평화를 보장하는 유효한 정책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누구는 “민주정부 10년 햇볕정책의 제1목적은 평화였다”며 햇볕정책으로 이 땅에 이 정도의 평화가 유지됐다고 주절댄다.
햇볕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의 핵심 담론은 평화였다. 그러나 민주당이 표방하고 내세운 평화는 위장된 정치 목적의 평화주의일 뿐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다. 평화는 상대적이어서 나 혼자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상대와 함께 심고 가꾸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는 남쪽 혼자만의 힘으로 유지될 수 없다.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어서 함께 유지해가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일방적인 대북 지원으로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햇볕정책은 몽상이었고 망상이었다.
민주당은 햇볕정책의 자기최면에 걸려 김정일이 원하는 대로 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면 한반도에 평화가 실현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민주당은 햇볕정책이 추진되던 그 시절에는 북한의 도발이 없었다며 햇볕정책을 옹호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햇볕정책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며 흥얼대고 있던 그때 북한은 핵을 만들고 미사일을 개발했다. 따뜻한 햇볕(대북지원)을 받아가며 흥겨운 콧노래 속에 자기를 보살펴준 양치기의 양들을 잡아먹을 궁리를 했다.
그러는 사이 좌파정권 10년이 마감되고 2008년 이명박 우파정권이 들어섰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좌파정권이 왜곡시킨 남북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것이 북한을 자극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깼다며 햇볕정책을 계속하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뒤집어보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화해 협력을 계속하라는 말로 이해된다. 햇볕정책을 계승하여 김정일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돈을 주고 평화를 사라는 것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돈을 주고 평화를 구걸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주고 산 평화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북한 도발이 이를 증명한다. 좌파정부는 햇볕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거짓평화를 참 평화로 착각하면서 북한에다 퍼주고 또 굽실거리며 평화를 구걸했다. 하지만 우리가 평화를 사겠다고 준 돈은 부메랑이 되어 핵과 잠수함, 그리고 해안포와 곡사포로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우리는 “평화는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웠다. 돈으로 거짓평화를 살 것이 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으로 ‘정의로운 평화’를 획득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강력한 군사력이야말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임을 터득했다. 평화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전쟁억지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생은 컸지만 소중한 교훈이었다.
지난 좌파정권 10년 간 추진한 돈으로 평화를 구걸한 햇볕정책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만 도우면서 거짓평화만 얻었다. 우리는 엄청난 돈을 주고도 평화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남북한 간의 존재양식을 대립과 갈등에서 화해와 협력으로 바꿔 북의 개방을 유도하고 이를 통일의 기틀로 삼겠다는 햇볕정책은 그래서 빈 껍데기로 남았다.
오죽하면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민주당 내 중도파 일각에서조차 비판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수정론까지 나오고 있겠는가. 지난달 30일 손학규 대표는 "햇볕정책이 모든 것을 다 치유하고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는 말까지 했다.
그렇다. 민주당은 이제 햇볕타령을 멈춰야 한다. 완벽한 정책은 없다. 한 때 옳았던 정책도 상황이 바뀌면 바뀌어야 한다.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어떤 정책이 ‘무결점’의, 그래서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책이 아니다. 일종의 종교요, 도그마다.
하나의 도그마가 수백, 수천 년을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하늘과 해와 달과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천동설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을 부인하면 신을 모독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천동설과 창조론은 지동설과 진화론으로 자리바꿈됐다.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도그마도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군림할 수 없게 됐다. 도그마에 빠져 있으면 낙오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도그마는 다른 주장이 설 리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도그마에 빠진 사람은 위험하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그런 사람을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했다.
지난 10년 간 좌파정권이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데서 실패했다. 민주당은 햇볕이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 수단인데도 그것이 마치 목적인 양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데도 지원 외에 대안 없다는 ‘햇볕 도그마’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좌파정부는 남북한 간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나가면 평화가 저절로 올 것으로 믿었다. 그리하여 남북 철도 연결과 개성공단, 그리고 금강산 관광 등을 평화의 상징인양 선전해왔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돈줄 역할을 하는데 기여했을 뿐 이번 연평도 도발에서 보듯이 평화정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확인됐다.
민주당은 하루라도 빨리 실패한 교조적 대북 햇볕정책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차기 수권정당으로 이 나라 제1야당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글 / 김영명 칼럼니스트
출 처 : 데일리안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29352